골프장 밖의 사람들-백대기를 그만두다
골프가 좋아서,
골프장에서 일해 보고 싶어서,
골프장 백대기가 되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9홀 골프 클럽에서 6개월간의 백대기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물론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던 점이 첫째 이유이긴 하지만, 골프장 백대기 업무를 선택한 데는 '골프가 좋아서'로부터 비롯되었다. 골프를 좋아해서 골프장에 라운드를 하러 자주 갔고, 골프 라운드를 할 때면 캐디 언니들에게 팁도 주고, 감사하다는 말도 건네고, 그늘집에서 쉬는 동안에는 마음껏 먹으라고 했지만, 백대기에게는 고개를 숙인 적도 없고 심지어는 골프장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몰랐거니와 관심도 없었다.
과연 백대기란...
백대기는 고객의 자동차에서 골프가방을 안전하게 꺼내어 보관대에 골프가방을 보관했다가, 티업 시간에 맞춰 캐디 언니에게 골프가방을 안내하고 간혹 골프가방을 카트까지 가져다주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백대기를 하는 분들은 대부분 퇴직하고 온 사람들이라 평균 연령대가 60을 훌쩍 넘기기에, 나는 정말 젊은 피였다. 백대기는 골프장마다 약간의 업무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골프장의 업무는 이랬다.
- 백대기 인원: 3명
- 근무일: 주6일 8시간 30분근무, 1일 휴무
- 근무시간: 오픈조(04:30~10:30), 중간조(06:30~15:00), 마감조(10:30~19:00)
- 주요 업무: 블로어 청소, 골프가방 운반 및 관리
새벽 오픈조로 보낸 6개월...
일반적으로는 3명이 교대로 근무를 하는 게 원칙이지만, 내가 원해서 오픈조를 담당했다. 새벽 4시 30분이 정해진 출근 시간이지만 실제 출근 시간은 그날 그날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새벽 4시 40분이 오픈 시간이면 오픈 시간에 맞추기 위해 최소한 1시간은 일찍 출근해서 블로어(바람으로 먼지, 낙엽 등을 부는 기기)를 메고 정해진 구역을 청소하고, 백대기가 근무하는 현관을 대충 청소한 다음, 전날에 고객들이 버리고 간 담배꽁초, 자질구레한 쓰레기 등을 주워야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3시 40분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일어나자마자 고양이 세수하듯 얼른 얼굴에만 물을 묻히고 집에서 3시에는 출발을 한다. 그리고 온갖 전등을 켜고 문을 연 후에는 난생 처음 보는 블로어를 등에 메고 이리저리 달리다시피 끝내면 온 등에는 땀으로, 먼지로 범벅이 된다. 선풍기를 켜고 땀에 젖은 셔츠를 말리고 잠시 있다보면 이른 참새가 방앗간에 오듯 고객들이 찾아오면 손으로는 이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동차 트렁크를 열고는 골프가방을 꺼내어 보관 스탠드에 올려 놓는 것으로 백대기 업무는 시작된다.
봄에는 꽃가루로 범벅을, 비가 오는 여름에는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되고, 가을에는 낙엽을 부느라 힘들다.
팀배정 시간이 6분 간격이어서 10팀이 배정되는 시간대에는 눈도 뜰새없을 만큼 바쁘다.
캐디 언니들이 골프 가방을 가지고 갈 때면 눈치껏 가져다줄지 말지 고민해야 하고, 이런 저런 농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깨야 하는 경우도 있다(난 태생이 빈말을 잘 못해서 이런 일은 정말...어색했고 싫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 사람들 간 관계
뭐니뭐니 해도 조직에 속한 사람들의 관계였다. 3명 밖에 안되는 작은 조직이었지만 50년 넘게 따로 살아오면서 제각각 형성된 성격, 관념 때문에 서로를 힘들게했다. 어떤 날에는 어색해져 말하지 않고 보내는 네다섯 시간은 정말 지옥처럼 느껴졌던 적이 적지 않았다. 이순( 耳順 )이 되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자할 것 같지만, 나를 포함해서 실제 만나게 되는 어른들은 더 편협하고 더 고집스러워 나이들었음이 불편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정말 제대로 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끝없는 자아성찰과 많는 노력이 따라야 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 백대기 그 자체
하루에 많을 때는 140팀(140팀X4명=560 골프가방 )이 넘었다. 그러니 골프가방을 꺼내고 놓으면서 엘보우가 왔고, 손가락마디도 시큰거렸고, 가끔은 골프가방을 내리고 올리면서 정강이에 부딪히거나 발등이라고 찍힐 때면 욕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삼켰다.
육체의 고단함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건 백대기라는 직업에 대한 낯설음에서 오는 약간의 부끄러움과 몇몇 무지한 고객들이 생각없이 내 뱉는 말과 행동으로부터 받는 상처였다. 나름 인생을 열심히 살아오고 교육도 받을 만큼 받았는 데, '왜 내가 저 사람들한테 이런 말을 들으야 할까'라는 물음에서 오는 힘듦이었다.
- 낯선 블로어 청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이른 새벽에 깨어 블로어를 메고 먼지, 낙엽 등을 부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제한된 시간 안에 청소를 끝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청소를 하는 동안 온갖 먼지들이 옷 속으로, 머리카락으로 들어와 젖은 셔츠와 팬티 속에서 끈적거릴 때는 저절로 짜증이 났다. 더욱이 씻을 때도 마땅치않아 대충 닦고 하루 내내 찝찝함을 버텨야하는 것도 참기 힘든 고역이었다.
***어둑어둑한 새벽에 굴다리 밑을 지날 때면 항상 몸이 오싹오싹해져 이름 모를 귀신 상념이 자꾸만 떠올라 무서워 큰 소리를 내기도 하고 발걸음을 총총거렸다. 소문에 예전에는 무덤이 많았었다고...
-휴일이 사라졌다
매주 수요일에 딱 한 번 오전에만 쉬고 백대기 업무가 끝나면 다시 강남으로 가서 내 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8시나 9시쯤이었다. 우물쭈물하다보면 어느 새 11시가 되고 3시간 정도의 쪽잠을 잤다. 이렇게 6개월을 지내다보니 오늘이 주말인지 평일인지 요일 관념이 사라졌고, 뒷목도 뻐근했다. 항상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저녁 시간은 사라졌고, 휴일도 사라졌다. 온전하게 휴일을 보낼 수 있었던 그 때가 너무나 큰 행복이었음을 잃고 난 후에야 깨닫다니...
가장 좋았던 건...
내 인생에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다른 부류에 있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사실 정말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좋았다. 그리고 백대기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로 인해 보여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고마움을 배웠다(힘들었던 것들이 직관적으로 보아도 많은 걸 보면 힘들 긴 힘들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비단 백대기 뿐이랴.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아야겠다. 그리고 이젠 골프 라운드를 갈 때면 백대기들에게 큰 소리로 감사하다는 말과 가끔은 커피라도 드려야겠다.
by K.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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