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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색다른 경험-레프리가 되다

by K. 그랜트 2023.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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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골프에 빠져도 너무나 빠졌다. 그런 까닭에 싱글 핸디 플레이어가 되고자 매일 연습장에서 땀도 흘리고 부지런히 유튜버 영상들을 보며 골프를 배우다, 우연한 기회에 참가한 올해 2월 KATGA 프로 테스트에 합격하였고 이 인연으로 난생처음 경기위원(혹은 레프리)으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경기위원 자격으로 참석하는 대회 한달 전부터 R&A 규칙을 정독했다. 애매한 부분은 노란색으로 밑줄을 끄어가면서 공부를 했지만 혹여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안고 새벽 5시쯤 경기도 가평 베뉴지 CC에 도착하니, 다른 경기위원과 스탭분들은 진작에 도착해서 서로들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구, 모두 부지런도 하다~~~

 

 쭈뼛쭈뼛 어색한 인사를 하고 경기위원 모자와 뱃지를 수령 후, 로비 옆에 마련된 회의실에 모여서 로컬룰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로컬룰]

  • 티잉구역 사용: 남성 화이트 티 / 여성 레드 티
  • 디봇(그대로 플레이), 멀리건 / 투볼 플레이 불가
  • 컨시드: 그립을 제외한 퍼터길이
  • 볼 찾는 시간: 3분
  • 경기 진행을 위해 순서에 관계없이 안전이 확보된 상태이면 준비된 플레이어가 먼저 플레이 할 수 있다.
  • 티샷이 아웃오브바운즈 혹은 패널티 구역에 떨어진 경우 골프장 로컬룰에 의해 특설티를 사용할 수 있다. 특설 티가 없는 경우는 스트로크와 거리에 의한 로컬룰 적용한다.
  • 우천으로 프리퍼드라이 룰을 실시한다. 마크를 한 다음 볼을 집어 올려 홀에 가깝지 않게 6인치(15 cm)이내에 놓고 플레이하며, 집어올린 볼은 닦을 수 있다.
  • 아웃오브바운즈 표시가 있는 구역으로 볼이 들어갔을 경우 페널티구역 구제를 적용한다.

베뉴지 CC 힐코스 1번

 

베뉴지 CC는 힐코스, 지코스, 휴코스 27홀로 매 코스마다 2명의 경기위원이 팀을 이루어 한 명은 티업 장소에서 참가자 인원을 확인 후 티샷을, 다른 한 명은 코스에 배정되어 팀간 지연이 없도록 원활한 진행을 담당하였다. 한 조로 배정된 경기위원과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카트를 직접 운전해서 언덕을 올라 힐코스 1번 티업 장소로 갔다.  

 

나는 코스에 배정되었다.

다른 경기위원의 개괄적인 로컬룰 설명과 함께 첫 팀의 티샷이 끝나자마자, 나는 첫 팀을 따라 카트로 이동하면서 전체적인 경기 진행 상황을 보고, 지연이 되면 재촉도 하고 혹시나 생기는 돌발 질문 또는 구제 방법에 도움을 주고자 티샷과 그린이 모두 보이는 지점에서 경기 진행을 지켜보았다. 곧 두 번째 팀이 티샷을 하고 첫 번째 팀이 그린에서 빨리 마무리하라고 재촉을 해야 했지만 나는 머뭇거릴 뿐 쉽사리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지 않고 뱅뱅돌기만 했다. 이렇게 우물쭈물 하는 모습을 보더니 경기위원 경험이 있던 어떤 사람이 다가와 처음에도 다그러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건네고 갔다. 난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2홀에서 9홀 사이를 카트를 몰다가 지켜보다가 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였다. 

 

모든 팀이 티샷을 마치자 6번홀(홀인원 상품이 배정된 파3홀)에서 경기를 지켜보라는 경기위원장의 무전이 왔다. 곧바로 6번홀로 가서 그린 뒤 나무 그늘 아래 카트를 멈추고 경기 진행 상황을 쭉 보면서 다른 경기위원과 눈치를 주고 받았다. 골프장 한여름의 오전 날씨는 무더워 작은 나무의 그늘 아래로 몸을 숨겼지만, 목이며 등이며 땀이 줄줄 흐르고 썬크림을 미처 바르지 못했던 팔뚝과 뒷목은 이미 불그스럼해져 피부가 따까웠다.

 

경기위원 입장으로 아마추어 골퍼의 행동을 보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다른 모습들도 눈에 들어왔다.

  • 제대로 된 루틴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많지 않더라.
  • 대부분 플레이어들의 어드레스 방향이 오조준이더라. 
  • 좋아하는(자신있는) 거리를 남겨두면 좋을텐데 무조건 우드를 잡더라.
  • 그린 주변에서 발품을 파는 플레이어가 없더라.

 

카트를 타고 멀찌감치에서 본 골프 코스는 너무나 아름다웠고, 골프 플레이어로써 나도 저기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치밀어 올라왔다. 무엇보다도 플레이어로 참가했을 때는 보지 못 했던 골프코스의 구성도 눈에 확들어와, 언덕 러프와 같은 트러블 상황에서 우드를 들고 가는 플레이어를 보면서 '나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라는 가벼운 탄식도 흘러나왔다.

 

아, 그래서 저기 쯤 벙커를 설치하고 페널티 구역을 만들었구나! 


이른 새벽 덜깬 눈을 비비고 연신 하품을 하면서 참가했던 경기위원으로써의 경험은 나름 수확이 많았다. 정확한 루틴과 골프 매니지먼트는 싱글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하고, 특히 그린 주변에서 좀 더 신중한 플레이를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내년에는 생활체육지도사 골프 2급을 준비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하릴없는 걱정에도 별 탈 없이 경기위원으로 무사히 경기를 마치게 되어 너무 너무 고마웠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졸음 운전과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그래도 행복한 하루였음이다.

 

by K.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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